37. 생닭이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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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양이와 나
37. 생닭이냥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장모종 고양이 키울 계획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예림이와의 인연으로 털의 새 차원을 경험하고 있다. 틈틈이 빗어주려 하지만 우리도 피곤할 땐 대강대강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러다 휴가기간에 동생에게 잠시 고양이를 맡겼는데, 아차 털 빗어주라는 말은 못했던 것이다. 돌아왔더니 기존에 엉킨 털을 기반으로 해 급속도로 엉킴이 더해갔다. 억지로 빗어주려 할 때마다 우리도 예림이도 괴로웠다. 어느 날 꾸덕하게 엉킨 털에 비듬 같은 것도 보이기에 피부병인가 싶어 병원에 데려갔다.
엉킨 것만 다듬어주세요
아침 일찍 동물병원에 예림이를 데려다 놓고 출근했다.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별다른 피부병은 없다는 연락이 왔다. 다만 털이 너무 많이 엉켜서 힘들어할 것이라고, 엉킨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 좋겠다고. 안 그래도 미용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찬성했다. 바로 미용 예약을 하고 예림이를 맡겼다. 대부분의 고양이가 미용에 협조적이지 않기에 마취에도 동의했다. 총 비용이 14만원이나 들었지만 예림이도 앞으로 더 깨끗하고 편하게 살 수 있겠지.

의사선생님과 통화를 하다 문득 생각나 물었다.

“저…, 그럼 미용을 하면 어떤 모양으로 나올까요?”

의사선생님은 뭔가 대답이 곤란한 눈치였다.

“아…, 많이 털이 엉켜서 그걸 잘라내는 식이라… 정확히 어떤 모양일지는… 미용 선생님께 연결해드릴까요?”

그 때 내 근무지에 고객이 도착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아니에요. 그냥 엉킨 것만 다 다듬어주세요. 잘 부탁드려요.”

엉킨 것만 다듬어주세요.
엉킨 것만 다듬어주세요.
엉킨 것만 다듬어주세요.

미용이 처음이라 몰랐다. 이 말이 그토록 무서운 줄은.
오후에 미용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분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지쳐있었다.

“저기, 예림이 묘주님? 예림이 미용은 잘 했는데요.”

잘 되었는데 왜 그토록 진이 빠져 있는가.

“예림이가 마취가 일찍 깨어서 그… 마무리 목욕을 도저히… 너무 흥분해 있어서요. 만 원 빼드릴게요. 목욕은 집에서 시키셔도 되겠어요?”

집에서 목욕하는 것이 뭐 대수랴. 그러마하고 만 원 굳었다며 기뻐했다.

그날 저녁, 병원 문 닫기 직전에 들러 이동가방에 담긴 채로 예림이를 전달받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내내 예림이는 무척이나 보채는 소리를 냈다. 집에 도착해서야 예림이 모습을 확인한 나는, 예림이가 얼마든 짜증을 내도 백번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닭, 집 요정, 혹은 고양이
만약 내가 납치를 당한 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맡겨서 마취를 당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생닭 혹은 도비(해리포터의 집 요정) 모습으로 변해 있다면, 가장 먼저 눈에 띈 닝겐에게 얼마든지 화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이 미용 선생님이었다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나는 예림이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고, 예림이는 서러움과 불안감과 안도감이 섞인 듯 꺼이꺼이 울며 다가왔다. 외모도 생소하지만 무엇보다 추워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안쓰러움 반 웃김 반(그러나 대놓고 웃지 않으려 노력했다)의 표정은 분명 녀석에게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내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 받으려는 것 같아, 금방 괜찮아질 거라며 예림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하지만 꺄올이는 그러한 배려를 보이지 않았다. 예림이가 이동가방에서 나오자마자 꺄올이는 당황해 예림이에게 하악질을 하였다. 넌 누구냐며, 난 너 같은 생닭은 모른다며. 예림이가 꺄올이에게 아는 척을 하자 꺄올이는 패닉에 빠져 안방 침대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곤 그곳에 숨어 한 시간 반 동안 생닭 아니 예림이의 동태를 살폈다.
기껏 예림이를 진정시켜놓으니 남편이 야근을 마치고 귀가했다. 현관에 들어선 남편이 예림이를 발견했고 예림이를 위해 반응을 자제하자고 얘기해 두었지만, 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속도보다 폭소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하지만 남편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왜냐면 너무 웃기니까. 너무 웃기다고.
예림이의 현재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 예전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꺄올이는 더 이상 예림이의 꼬리가 탐스럽지 않자 예림이를 귀찮게 굴지 않는다. 그래선지 둘 사이도 조금 좋아졌다. 처음에는 이불에서 나오지 않던 예림이도 이제 예전처럼 집을 누빈다. 모두가 적응해가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웃긴 건 어쩔 수 없다. 13만원을 들여 데려온, 우리가 사랑하는 생닭. 내 배 위에 또아리를 트는 생닭. 나를 핥는 생닭. 일하지 않는 집 요정.
글·사진 이현 (https://www.instagram.com/babyplay51)
198X년 서울 출생. K대학 심리학과. 언론학과 졸업. 영상프로덕션을 잠시 거쳐 외국계 홍보대행사에서 수년 간 일하다 퇴사 후 현재 E대학에서 석사과정 중. 집사경력 11년 차이나 고양이와 친해진 건 처음이라는 것은 비밀.
문의 cat@catxca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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