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고양이가 있어야 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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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양이와 나
35. 고양이가 있어야 해 2
휴가를 떠나며 분명 “휴가지에서도 마감을 지킬 것이다”라고 호언장담 했다. 그러나 페낭 어느 호텔의 선 베드에 눕는 순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양해를 구하며 "대신 새로운 장소에서의 고양이 사진을 가져가겠다"고 시키지도 않은 공약을 내걸었다.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나 이번 휴가의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지상냥원일세
목표한 휴가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자연친화적 리조트에서 길게 누워 컬러풀한 음료를 마시며 소설책을 읽는 것이었다. 사실 마음속에 미리 점지해 둔 장소가 있었으니, 바로 랑카위 섬의 본톤 리조트(Bon Ton Resort)와 그 형제인 템플트리 앳 본톤 리조트(Temple Tree at Bon Ton Resort)였다. 남편과 몇 년 전 방문했을 때 기억이 좋았기에 사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랑카위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말레이시아 전통 목조 가옥과 센스 넘치는 인테리어, 그리고 그 모든 풍경에 어우러진 고양이들이다. 이 리조트는 랑카위 동물 보호 재단 LASSie(The Langkawi Animal Shelter and Sanctuary Foundation)를 후원하고 있는데, LASSie는 방임되거나 학대당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그들 삶을 개선시키고자 힘쓰는 단체다. 동물과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돕는 것이 LASSie의 목표라고 하는데, 본톤 리조트에서는 그 목표가 현실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거운 짐을 끌고 기념품 가게 쪽 입구로 들어가자 카운터에 흰 고양이가 떡하니 누워있었다. 당당한 자태가 흡사 안주인의 그것이라 나를 맞이하는 직원과 고양이 중 누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어야 할지 순간 헷갈렸다. 직원은 이 고양이를 '마니'라고 부르며, 일본의 복고양이(후덕하게 앉아 한 손을 들고 있는 그것)처럼 녀석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복고양이라면 집에 열 마리는 앉혀놓고 싶은 마음이다.
| 당당하게 누워있던 복고양이 '마니'
햇볕 내리쬐는 안뜰에는 삼색이 한 마리가 세상모르고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무얼 찾는 건가 해서 가까이 갔지만 그저 흙과 풀뿐이었다. 내 관심을 느낀 삼색이는 갑자기 의자로 폴짝 뛰어올라 자신의 X꼬를 핥기 시작했다. 흠…. 고양이의 행동에 이유를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인가. 어쩐지 몇 년 전보다 고양이 수가 적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의자에 고양이들이 누워 꿀잠을 자고 있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는 나름의 스케줄이 있나 보다. 꺄올이 닮은 녀석의 통통하고 부드러운 배를 만지고 싶었으나 나의 안위를 위해 참았다.
역시 고양이가 있어야 해 
섬에 근사한 해변이 있다고 하여 다녀왔더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근처 유명한 해산물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 주문을 하려고 보니 갑자기 쓸쓸함이 밀려왔다. 남편과 함께라면 아주 신이 나서 온갖 해물을 골고루 주문했을 텐데, 혼자서는 새우 몇 개와 볶음밥으로도 이미 배가 빵빵하게 불러왔다. 해 진 후 숙소로 가는 길엔 가로등도 몇 없었다.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물에 빠진 생쥐 꼴로 공포에 떨며 숙소로 돌아왔다. 자연을 벗 삼은 리조트는 해가 지자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말(?)벗 되어줄 고양이 한 마리라도 있었으면 했지만 그 많던 고양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여전히 적적한 마음으로 방문을 여니 하늘은 화창하게 개어 있었고 문 앞엔 얼룩냥이 한 마리가 마치 선물처럼 앉아 있었다. 자신을 반기는 것을 알아챘는지 얼룩냥은 총총총 계단을 올라와 내 방에 떡 하니 들어왔다. 꺄올이와 예림이 생각이 나 반갑게 손을 내밀었는데, 어라, 이 녀석은 내 손을 쓰윽 피해 내 뒤에 있던 의자로 직행했다. 그리곤 마치 이곳이 자기 집인 양 편하게 쿠션 위에 똬리를 틀었다. 금세 쌔근쌔근 잠든 녀석을 내쫓지도 못하고 난감해 하다가 일단 한 시간 가량 수영장에 다녀왔다.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녀석은 귀만 까딱이더니 그 자리 그대로 누워 색색 잠을 잤다. 낯선 사람이 오가도 신경 하나 쓰지 않는 고양이라니. 이곳 고양이들은 이 리조트가 참 편한가 보다. 누군가를 경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달까. 여기저기서 릴랙스하는 고양이들 덕에 나 또한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냥덕의 휴가란
흡족하게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다음 원고 소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캣바이캣에서 다루지 않은 곳의 고양이 사진을 가져가겠다는 약속이 생각나서다. 그런데 뭔가 갑자기 기분이 쎄했다. 이진아 님의 <마이 쿠칭>에서 예전에 고양이 벽화를 보고 페낭 조지타운을 찾아갔더랬지. 호 혹시…. 그렇다면 랑카위도 이미 이진아 님이 소재로 쓰신 건 아닐까? 에이 설마. 아니 그래도 혹시…?  

지난 글을 확인해보았더니 맙소사! 같은 장소. 정확히 같은 리조트. 하하하하하. 고양이 애호가들끼리는 휴가지도 같은 장소로 고를 수 있다는 건가? 다행히 별 상관없다고 말해줬지만. 나의 호언장담에 스스로가 멋쩍어질 뿐이다.

오늘도 그 고양이들은 지상냥원에서 평화롭겠지. 또 말레이시아에 가게 된다면 다시 본톤 리조트로 향할 것 같다.
글·사진 이현 (https://www.instagram.com/babyplay51)
198X년 서울 출생. K대학 심리학과. 언론학과 졸업. 영상프로덕션을 잠시 거쳐 외국계 홍보대행사에서 수년 간 일하다 퇴사 후 현재 E대학에서 석사과정 중. 집사경력 11년 차이나 고양이와 친해진 건 처음이라는 것은 비밀.
문의 cat@catxca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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